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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채피 (Chappie) 


 올해 초에 개봉한 영화 '채피'를 어제 보게 됐습니다. 블롬캠프 감독의 의도가 연출 과정에서 중구난방 흩어지는 기분이 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디스트릭스9과 대조되면서까지 혹평을 받았던 영화였지만, 순수한 '인격'을 로봇의 몸을 가지고 태어난 채피라는 주인공의 모습이 흥미로워 재밌었습니다. 영화 이야기는 별개로, 제게 인상 깊었던 건 채피를 부모로서 길렀던 '닌자'와 '욜란디'라는 인물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마치 세기말에나 입을 법한 독특한 외향과 언행을 가졌습니다. 또한 극이 2016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미래적이고 몽환적이었던 이유는 이 커플 갱단이 나올 때마다 흐르는 노래 때문이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기묘하고 별난 음악은 관객들에게도 어지간한 애매한 체험(?)을 선사해준 모양입니다. 채피는 흥행하진 못했지만, 음악으로는 조~금 관심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블롬캠프 감독은 Die Antwoord라는 그룹의 팬이라고 합니다. Die Antwoord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출신의 힙합 그룹입니다. Die Antwoord의 뜻은 아프리칸스어로 The Answer를 의미합니다. (아프리칸스어는 모태를 네덜란드어로 삼습니다. 본국과의 언어 교류가 단절된 상태에서 남아공 사람들 사이에서 영어, 프랑스어 그리고 토착어가 네덜란드어에 혼합되어 생겨난 언어입니다)  이 그룹의 멤버는 두 명인데 둘이 바로 영화에 등장한 닌자와 욜란디입니다. 블롬캠프 감독이 둘을 영화에 캐스팅하면서 영화 음악까지 이들의 통찰력에 맡겼습니다. 그렇게 영화 전체에 Die Antwoord의 노래가 가득하게 되었던 것이죠. 영화를 비판하는 이들은 2시간짜리 뮤직비디오가 아니냐며 비아냥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음악은 요하네스버그의 암담한 본새에 겹치면서 백인 서양 문명에 익숙한 많은 관객(물론 한국 관객들도 포함)에게 기묘한 느낌을 주게 된 것이죠. 실제로 이들은 아티스트로 사용하는 이름을 극에서 그대로 사용했고, 커플 관계였던 둘의 모습도 그대로 영화 속에 담았습니다. 둘 사이에는 딸도 있습니다. 하지만 둘은 ex커플일 뿐입니다. 과거에 커플이었던 사이었지만 지금은 결혼한 사이도 아니고, 커플도 아닙니다. 하지만 같이 Die Antwoord 활동을 하고 있고, 채피 같은 영화에도 같이 출연하는 관계입니다. 이상한 관계죠? 진보적인 관점을 가져와도 참 독특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1. 음악가 겸 배우? 배우 겸 음악가!


 이들의 음악은 위키피디아를 따르면 레이브(Rave)와 얼터너티브 힙합(Alternative Hiphop)이라 명시하고 있습니다. 레이브는 레이저나 조명으로 시각적 효과로 가득한 일정 공간에서 DJ를 대동한 하우스 음악이나 테크노 음악으로 춤을 추며 파티를 할 때 사용하는 음악을 칭합니다. 하지만 음악을 들어보면 기존 장르로는 Die Antwoord를 단박에 정의하긴 힘듭니다.

특징을 한번 짚어보겠습니다. 이들의 음악은 빠른 전자 비트를 취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흥이 나는 템포입니다. 춤은 출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들이 사용하는 이펙터나 사운드는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그것들이 전혀 아닙니다. 괴상한 영화 속에서 문란하고, 퇴폐적인 장소에서나 흘러나올 법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낯선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에, 욜란디의 환각적인 목소리는 음악을 한층 더 불가사의하게 만들어줍니다. 욜란디의 랩은 이미 Die Antwoord의 음악을 대기권 밖으로 훌쩍 던저버립니다. 이들의 뮤직비디오도 마찬가지입니다. 할말이 안 나올 정도로 이상합니다. 이상하다, 이 말 말고 어떻게 이들의 음악을 설명할지 모르겠습니다.



2. zef; 제프


 굉장히 낯설고 거부감 드는 음악을 하지만, 이들을 좋아하는 팬들은 신기할 정도로 상당히 많습니다. 유튜브에 올라간 그들의 뮤직비디오 영상에 달린 댓글은 이렇게 말합니다. "i hate this, but i love this. i'm confused.(난 이 노래가 싫어. 근데 난 이게 좋다. 혼란스럽다.)" 가사는 욕설이 가득하고 단어들은 음란 그 자체고, 사운드는 괴상한데 이상하게도 자꾸 이들의 음악을 듣게 되는 겁니다. 이들의 매력, 아니 마력의 원천은 단순한 똘아이 콘셉트에서 나오는 걸까요..?

아닙니다. 이들의 태도와 자세는 스웨그(Swag)처럼 안이 빈 개념은 아닙니다. 이들은 제프(zef)라는 가치를 추구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닌자와 욜란디의 근본없어 보이는 이상한 관계(?)와 ㅂㅅ같은 음악의 뿌리엔 제프라는 가치가 숨어있습니다. 제프는 영어 단어로는 'Common'을 뜻하며, 영국의 차프(chav)와 비슷한 맥락의 뜻을 가진 남아공 슬랭입니다. 하위 문화를 향유하는 자들이 기득권의 시선과 편견을 신경쓰지 않고 자부심을 가지고 당돌하게 있는 그대로를 세상에 드러내는 가치관을 의미합니다. 어원을 보면 그 뜻이 명확해집니다. 

1950년부터 금 값이 절반으로 내려 앉게 된 닉슨 쇼크가 일어나는 1970년대까지, 채금(金)으로 인한 남아공의 금전적 여유로 인해 비교적 가격이 저렴했던 포드(Ford)의 제피(Zephyr)라는 자동차를 소유하게 된 노동계층을 중산층이나 부유한 사람들이 비하할 때 사용한 말이 바로 제프(zef)였습니다. 노동자들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단어가 이제는 새로운 뜻으로 하위 문화를 옹호하는 데 사용되는 것이죠. 욜란디의 말을 따르면, 제프는 "네가 가난해도, 넌 멋있을 수 있어. 네가 가난해도, 넌 섹시할 수 있어"라고 정리됩니다. 아프리카 땅에서 백인 문화, 골드러시, 인종차별 등 다양한 역사 속에서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하고, 보기 드문 갈등 양상 속에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제프라는 선언이 나오게 된 것이죠. Die Antwoord는 음악은 물론이고 패션이나 삶의 태도라는 생활 일반 그리고 문화 전반에 제프라는 자유분방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Die Antwoord가 보여주는 제프는 채피에서도 소니 노트북에 붙은 스티커에서도 확인할 수 있고, 그들이 속한 레이블 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3. 새로운 다양성의 가능성, 남아공


 세계는 인터넷을 통해 국가 또는 문화의 사이가 더할나위 없이 긴밀해졌고, 사람들이 향유하는 문화의 가지수는 포화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아공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토착 아프리카 문화에 제국주의 국가로 인해 백인 문화가 땅을 점령하게 되고 이 안에서 문화의 정복과 결합과 크고 작은 갈등이 싹트기도 했습니다. 이 역사 속에서 다른 어떤 지역에서도 없었던 새로운 양상의 문화가 탄생하게 된 것이고, 그 중 하나가 제프가 되는 것이죠.

요하네스버그 출신 블롬캠프 감독의 영화가 추구하는 모습은 기존 할리우드 영화의 양상과는 달라 많은 영화팬들이 신선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Die Antwoord의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서구 문명의 틀 안에서 이제는 낯선 음악은 더 이상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들의 음악을 듣노라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찾은 것만큼 새로운 지평을 연 것처럼 느껴집니다. 남아공에서 나올 독특하고 신선한 문화가 기대됩니다.



댓글
  • 프로필사진 Keinz 이 시대의 화두는 얼마나 신선하냐 일까요? 2015.11.30 13:04
  • 프로필사진 BlogIcon Mr Brightside 기존 틀 안에서 완성도로 승부하지 않는다면, '신선하다'라는 간판은 충분히 메리트있는 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심지에 기존 틀 안에서도 '낯설게 하기'라는 전략도 쓰기도 하니까요. 2015.11.30 14:4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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