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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를 처음 만난 건 탑밴드1에서였다. 모든 출연팀이 경계하는 밴드들 중 하나였고 애초에 우승후보로 낙점된 팀이었다. 그들은 이미 2009년에 아시아 최고 규모의 록 음악상인 아시안 비트의 정상에 올랐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탑밴드1은 포(Poe), 게이트 플라워즈, 톡식 그리고 브로큰 발렌타인이 실질적인 주인공이었다. 비록 불운했던 대진과 부진한 컨디션으로 우승의 길은 걷지 못했지만, 앞에 언급한 네 팀 중에서도 가장 대중의 마음을 현혹할 멜로디 라인을 선보였고, 음악적 스펙트럼도 어떤 팀보다 넓은 편이었기에 항상 무대에서 실망시키는 일이 없었다. 다른 팀들이 어떻게 평단과 시청자의 마음을 동시에 살까 고민하는 와중에 브로큰 발렌타인은 고민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줌으로써 동시에 두 곳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탑밴드에서 얼굴을 널리 알렸음에도 몇 해를 기다려도 그들은 여전히 언더그라운드에 그들의 팬 앞에서만 설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그들의 앞길은 탄탄치 않았다. 가장 음악을 잘한다고 하는 밴드였지만 한국 음악 시장은 이들을 허락치 않았다.


 보컬 반은 더욱 남성미를 강조하기 위해 아이라인을 그려 부드러운 인상에서 사나운 눈매로 무장했다.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무대매너는 당당했고, 자신감 넘쳤고, 동시에 마치 각본있는 것처럼 과잉 되지 않게 절제 되었고, 어느 누가 흠잡을 곳이 전혀 없었다.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는지 그는 괜찮은 외국계 기업이라는 안정적인 자리에 있었지만, 사표를 던지고 음악 전선에 모든 걸 내던지기도 했다. 삼포시대에서 그의 행보를 보면서 굵직한 울림을 준다. 불투명을 위해 분명한 걸 포기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숱한 책에서 하고 싶은 걸 하며 살라며 말만 던지지 않았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훌륭한 표본으로 남았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못다핀 꽃이 지는 것이며, 인디씬의 비극이며, 젊은이들의 희망이 사라짐을 의미한다. 이 모든 말들이 브로큰 발렌타인 멤버들과 유족들의 슬픔에 비하지 못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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