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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고 스타와 폴 매카트니.



0. 비틀즈 멤버 중 마지막.


 링고 스타의 명예의 전당 입성 이야기를 알기 전에, 먼저 알아야할 점은 비틀즈는 밴드로써 이미 1988년에 명예의 전당 입성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비틀즈가 1970년에 해체한 후 각 멤버들은 각자 자신만의 디스코그래피를 이어나갔습니다. 각자 솔로 앨범을 내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각자가 스스로 쌓은 로큰롤에 대한 업적과 기여에 입각해 비틀즈가 아닌 솔로 아티스트로 다시 한 번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는 것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은 각각 사후인 1994년과 2004년에, 폴 매카트니는 1999년에 입성을 했습니다. 게다가 제5의 멤버라고 불린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2004년에, 프로듀서인 조지 마틴도 1999년에 'the Ahmet Ertegun Award'(비연주자 부문)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2015년 4월 19일에 링고 스타를 마지막으로 비틀즈(The Beatles)와 비틀(The Beatle)이 완전하게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된 셈입니다.



1. 과소평가의 대표격 '링고 스타'


 링고 스타는 비틀즈 10년동안 엄청난 존재감을 자랑하는 다른 세 동료들 사이에서 그들만큼 번쩍이는 존재감을 보여주진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링고 스타의 덜 유명함 때문에 종종 익살스러운 장난을 치기도 합니다. 심슨에서는 호머 심슨의 "됐어! 그래, 난 필요없는 존재야! 비틀즈로 치면 링고 스타 같은 존재라고!"라는 대사나, 500일의 썸머에서 쥬이 디샤넬이 링고 스타가 인기가 없기 때문에 가장 좋다고 말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인터넷 여기저기서 많은 팬들은 링고 스타의 덜 드러나는 존재감을 간지르는 드립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들이 결코 링고 스타의 무능력을 직접적으로 꼬집는 사례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링고 스타의 둥글둥글하고 유쾌한 성격, 특히 링고 스타가 어디에서도 모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가치관을 가졌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누구보다 자기 관리에 철저했고, 비틀즈 말기에 멤버 사이의 불화와 갈등 속에서 중재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비틀즈라는 이름이 이만큼이나 지속될 수 있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링고 스타는 해체 후 주도적으로 멤버들간의 협업을 자주 이어나가 비틀즈라는 이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위로해주곤 했습니다. 

그는 이번에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면서, 다른 세 멤버가 이미 명예의 전당에 올랐던 사실도 몰랐다고 밝혔습니다. 그만큼 명예욕에서부터 자유로운 그의 성품을 알 수 있기도 합니다. (제가 만약 링고 스타였으면, 비틀즈 멤버 중 나만 입성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열등감에 휩싸이고, 배알이 꼴리는 경험을 했을 텐데 말입니다.) 수락 연설에서도 그는 "My name is Ringo and I play drums(제 이름은 링고 스타며, 저는 드럼을 연주합니다.)"로 겸손하게 시작을 끊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그가 누구인지 아는 데도 말입니다. 게다가 그는 축하 공연으로 비틀즈의 곡인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를 부름으로써 자신의 업적에 대한 자부심을 돋보이려고 하기보다 명예의 전당 입성에 도움을 주었던 폴 매카트니를 비롯한 동료에 대한 감사를 담은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의 너그럽고 군자같은 마음씨는 비단 비틀즈 활동 전후는 물론이고 명예의 전당 무대에서도 여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의 성격을 강조한다고해서, 그의 드럼 실력이 '정말로'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링고 스타로 하여금 록 밴드라는 예전에는 없는 틀을 만들어냈고, 그로 하여금 현대 록밴드에서 드러머의 역할과 존재가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드러머로는 드물게 실제로 노래도 부르고, 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곡도 여럿 남겼습니다. 이처럼 링고 스타는 알고 보면, '생각보다' 존재감을 자랑했던 멤버였습니다. 






2. Unsung Hero


 맨유에서의 박지성 선수는 '언성 히로'라는 이름으로 유명했고, 예전 프로농구 전주KCC에서 추승균 선수는 '소리없이 강한 남자'로 유명했습니다. 이 둘은 팀에서 화려함 측면에서는 스타 플레이어에 가려 돋보이지 않았지만 감독이 부여한 역할과 보여주는 알짜 성적을 기록하면서 팀에 엄청난 기여를 했던 중요한 일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그토록 좋아해주고, 심지어 은퇴한 후에도 두 선수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유독 스포츠보다 스포트라이트가 특정 멤버에게 더 집중되기 쉬운 음악계에서는 박지성이나 추승균과 같은 맥락으로 스타가 아닌 멤버를 칭송하는 모습은 보기 어렵습니다. 현실에서 팬들은 FT아일랜드에서, 너바나에서, 마룬5에서 바로 떠올리는 얼굴은 단 한 명이나 많아봤자 두 명 정도의 멤버뿐이고 그 배후의 멤버들은 관심을 받지도 못하거나 심지어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례의 뒤안길에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비틀즈의 링고 스타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성공적인 밴드인 비틀즈 출신이면서, 유난히 그 유명세와 인기를 등에 업지 못한 멤버. 이를 잘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한 모순이 담겨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뒤늦은 링고 스타의 명예의 전당 입성이 시사하는 바가 더 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팬들을 자극하거나 언론의 흥미를 돋구는 언행을 하는 화제성이 없었다고 해서, 비틀즈의 히트곡을 작곡하지 않았다고 해서, 외모가 뛰어나지도 않았다고 해서, 비틀즈의 한 구성원으로써 팬들과 언론이 보지 않는 곳에서 그룹에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여를 했던 링고 스타의 업적을 함부로 폄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저는 링고 스타의 명예의 전당 입성이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스타만을 원하고, 노이즈 마케팅이나 바이럴 마케팅 등 시끄러운 화제만을 원하는 사회 속에서 그 순리대로 관심 밖에 함몰된 고요한 인재,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구보다 정진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겐 링고 스타의 이야기는 잔잔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 링고 스타가 짊어졌던 역할은 누군가가 했어야했고, 링고 스타가 묵묵히 지킨 그 자리에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비틀즈, 그리고 존 레논이나 폴 매카트니가 없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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