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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양하기 마련이다. 알고 보면 다들 유난히 자기중심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곤 한다. 나에겐 공간, 그러니까 지도 위 2차원 세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인식 틀이다. 나는 공간으로써 세계를 받아들인다.


내가 걸었던, 방문했던 공간은 서랍 속 고이 숨겨둔 보물과 같다. 고등학교 야자 끝나고 버스 타러 가기 위해 걷던 피맛골은 사색하기 퍽 좋았다. 지금은 으리으리한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사라져가면서 아쉬움을 주지만, 그 공간은 나에게 추억이 가득한 공간이다.


대학교 앞 저렴한 밥집이 즐비한 시장통도 의미심장한 곳이다. 과거 1960년대 그곳 옆으로 기동차가 지나다녔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을 때가 있었다. 기동차는 청량리를 출발해 뚝섬 유원지까지 사람들을 날랐다고 한다. 퍽퍽한 산업화 속 서울을 살아가는 산업역군들이 여가를 즐기러 가는 데 꼭 필요했던 운송 수단이었다. 행복을 나르는 기동차는 대학시절 밥먹고 술마시던 그 길 위로 부산스럽게 다녔다고 한다.


그곳에 담긴 누군가의 이야기도 나에겐 소중하다. 친구 만나러 서촌의 한구석을 걷던 중 내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길가에 '세종대왕 나신 곳'이라는 표지석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며 "나 지금 세종대왕 태어난 곳에 서 있어"라고 말했다. 아무곳도 아닐 뻔 했던 공간이 600여 년 만에 세종대왕을 우연히 만난 곳이 됐다.


내 발길이 묻어 있는 곳엔 누군가와 희로애락을 나눈 공간도 셀 수 없이 많다. 이따금 새로운 경험이 기존의 것에 덧입혀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공간을 지날 때 기억 속 편린들이 불쑥 튀어나와 조우한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 기억들은 내가 살아온 삶을 증명해주며 살아있음을 보증해준다. 내가 과거의 나와 존재론적 연속성을 공간에서 찾는다. 안녕, 과거의 '나'.


백양로, 자하문로, 계동길, 삼청공원, 성동교 옆 팔각정, 살곶이... 서울 곳곳에 소중한 기억들이 서려 있는 공간들이 많다. 소중한 기억들이 없다면 여느 평범한 장소가 될 수 있었던 공간들. 몇몇 공간들은 가끔씩 송곳처럼 삐죽 튀어 나와 그곳을 지나는 나를 콕콕 찌르기도 한다. 송곳들은 나를 깨우치기도 하고, 머리를 관통해 새로운 공간과 추억들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을 제공하기도 한다.


내일 나는 어느 곳에 나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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