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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정의 가장 하이라이트 장면일 수도 있는 순간에 흐르는 곡이 있습니다. 곡 끝에 트럼펫 연주가 거의 끝나갈 때까지 거의 전곡이 흘러나옵니다. 바로 'When You're Smiling'입니다. 이 곡은 1928년에 마크 피셔, 래리 셰이, 조 굿윈이 작곡했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 동안 루이 암스트롱, 빌리 홀리데이, 냇 킹 콜, 시나트라, 주옥 같은 재즈와 팝 아티스트에게 불리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곡이 되었습니다. 그중 가장 사랑 받는 곡이 바로 밀정에 삽입된 버전입니다. 1절은 암스트롱만의 걸걸한 보컬이 가락을 이루고, 2절은 그의 트럼펫이 그 역할을 해내는 곡입니다. 아름다운 선율은 영화 속 장면에 버무러집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일본의 침략을 받지 않았고, 우리의 주권을 지켰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분명 1920년대 우리 음악은 어떤 형태로라도 존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엔 '만약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의 1920년대 음악은 전혀 없습니다. 여전히 그 전에도 불렀던 판소리, 민요, 잡가 등이 순사들의 눈을 피해 울려 퍼질 뿐이었습니다. 서양 음악과의 융합은커녕 우리 고유의 음악 정체성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판국이었습니다. 영화에선 그 음악이 채워져야할 곳에 이역만리 먼 곳의 '재즈' 곡으로 채워졌습니다. 이렇게 미완성적일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1920년대입니다.

 

 

 

 

 

 

일본의 문화통치를 거치며 우리음악은 자연스럽게 민중들 사이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음악적 욕구는 일본의 '엔카'라는 음악이 대신 합니다. 엔카는 우리나라에도 인기를 끌었고,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에도 우리식에 맞게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바로 지금도 인기를 끌고 있는 '트로트'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트로트도 일본의 잔재며, 문화 침탈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뿌리 깊게 인기를 끄는 와중에 트로트를 듣지 말자는 주장은 또 하나의 문화 말살 행위에 지나지 않겠지요.

 

밀정의 1920년대에 흘러나오는 곡이 우리의 음악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만약 '밀정'이란 영화에 우리의 1920년대 음악이 흘러나올 수 있다면, 일제강점기를 그린 '밀정'은 만들어질 수 없는 영화였을 겁니다. 말 그대로 아이러니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가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독립을 위해 땀 흘리고 피 흘린 분들의 희생을 경시하고 아예 무시하려하는 후손들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분들이 해왔던 활동을 그린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그분들을 부정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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