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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은 감성을 합리화하는 존재라는 말이 있다. 일견 그럴 듯해 보인다. 감성은 흔히 사적인 의견, 근거로 작용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직관적 불만이 가득한 사람이 공적인 자리에서 그럴싸해보이는 말을 하기 위해서 평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성은 감성을 합리화한다는 말은 이렇게 평론 세계에서도 통용되곤 한다.


그러나 평론은 필요하다. 모든 영역에 평론가는 존재하며 이들은 문외한과 마니아 모두에게 해설해주고 얕은 차원에서는 생각하지 못한 장단을 지적해며 큰 효용성을 선사하는 사람들이다. 평론을 예술의 영역에서 국한하자면, 그들은 예술 작품과 함께 비판발전하는 공생 관계며, 예술은 평론이 없으면 제 위치를 알지 못할 뿐더러 앞으로 나아갈 길 역시 잃는 셈이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기 전 관람객의 리뷰는 물론 평론가의 평가 역시 빼놓지 않는다. 뉴스에선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해 무기 평론가가 등장해 정보를 나누고, 대학 입학을 앞둔 고3들은 선생님이라는 대학 평론가의 조언을 듣고, 모든 사람의 크고 작은 고민 상담을 해주는 모든 선배나 친구들도 인생 평론가다. 평론가는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다. 평론가 역시 자신의 평론에 대한 책임을 진다. 박평식 영화 평론가는 특유의 짜디 짠 평점으로 조롱 받고 비꼼 당하고, 듀나 영화 평론가 역시 명성만큼 비판도 자자하다. 그러나 평론가의 생각이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평론을 까는 것은 그와 같은 이유로 다른 사람들에게 호응 받을 자격을 박탈될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아메리칸 셰프>(2014, 존 파브로) 영화는 한 자존심 센 셰프가 등장한다. 칼 캐스퍼가 중견 레스토랑을 자기만의 소신대로 이끌어 나가는 바로 그 주인공이다. 명망 있는 음식 평론가인 램지 미첼의 도전을 받으며 그의 셰프 커리어는 상처 입는다. 인터넷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가진 램지 미첼이 칼 캐스퍼를 평가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평론가의 휘황찬란하며 온갖 비유 가득한 언어의 향연으로 칼 캐스퍼가 폄하 받자 그는 평론가에게 저열하게 대응한다. 평론가의 평가가 부정적이었고 모욕적이었다는 이유로 음식을 집어던지고 소리치며 감정적으로 항변한다.


우리나라 힙합 음악과 평단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2008년 이즘의 한동윤 평론가가 버벌 진트의 앨범 '누명'을 평론했다. 랩의 정의를 언급하며 그의 가사가 드문 반주 일색인 곡을 아쉬워했고, 랩 안에서 이뤄지는 언어 변용이 언어 파괴 수준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또한 개성 없이 한참 인기를 끄는 클립스, 쿨 키즈의 음악을 따라한 것처럼 여백이 강조되는 비트를 강조했다 평했다. [해당 평론 링크] 앨범엔 5개 만점에 별 3개를 줬다. 이런 평가에 버벌 진트는 원색적으로 반응했다. 2010년 트위터에서 버벌진트가 올해의 쓰레기평론가상을 한동윤에게 줘야한다고 조롱한 것이다.




평론가의 소신 담은 평론에 구색 갖춘 피드백도 아닌 노골적인 디스는 올바르지 못하다. 힙합의 디스 문법은 힙합 안에서만 존중 받을 수 있다. 이 앞뒤 보지 않는 디스가 힙합 영역 밖으로 나오게 되면 그건 저열한 폭력이고 찌질함에 그칠 뿐이다. 버벌 진트의 언행은 분명히 틀렸다. 하지만 틀린 사람이 한 명은 아니었다. 한동윤 평론가는 또 6년이 지난 후, 버벌 진트가 음주운전으로 구설수에 오르자 이런 게시물을 올린다.



<아메리칸 셰프>의 악역으로 등장한 평론가 미첼은 영화 마지막에 칼 캐스퍼의 '진짜' 요리를 맛본 후에 그의 지지자인 동시에 지원자가 된다. 이런 모습을 보인다고 결코 평론가가 지난 자기 평론을 굽히거나 그 의미를 번복하는 것도, 심지어 자존심을 버린 것도 아니다. 칼이 자신의 철학과 정성이 담은 음식을 맛본 후에 미첼이 보인 변심은, 결국 평론가로써 자신이 여태까지 '좋은' 음식에 대해 그만큼 합리적이고 엄격한 평가를 해왔다는 반증인 셈이다. <아메리칸 셰프>속에서 평론에 무식하게 대응한 칼 캐스퍼의 모습에서 버벌 진트의 모습이 비껴보인다. 그러나 칼 캐스퍼의 모욕과 조롱에도 철저히 평론에 충실했던 램지 미첼의 역할은 한동윤 평론가가 해내지 못했다. <아메리칸 셰프>는 상호호혜하는 해피 엔딩이었지만, '코리안 아티스트'는 치킨게임으로 얼룩진 배드 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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