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

탈영병 잡는 D.P, 불참 예비군 잡는 상근예비역

 

넷플릭스 드라마 DP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군대물이라는 장르적 한계가 있음에도 연령대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아무래도 DP라는 보직이 군대 안팎을 오가면서 신선한 장면과 상황을 연출하고, 누군가를 추적하는 수사물의 느낌도 있고, 무엇보다 주연을 맡은 정해인이 존재감을 내뿜기 때문이 아닐까.

 

군필자에게조차 낯설기도 한 DP라는 보직은 임무수행 그 자체로 군필자들에게도 흥미로운 요소를 잔뜩 담고 있다. 수시로 바깥을 드나들 수 있다는 점, 휴대폰을 소지할 수 있다는 점, 탈영병 추적에서 수사권을 갖는 점, 민간인으로 위장하기 위해 머리를 기를 수 있다는 점.

 

DP처럼 사람들이 잘 모르는 비슷한 보직이 있다. 상근예비역(이하 '상근'이라고 지칭)이라는 보직이다. 공익근무요원도 아닌데도 복무기간에 출퇴근으로 지낸다는 점 때문에 흔히 '신의 아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2009년 상근으로 입대해 별일 없이 전역한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상근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집으로 출퇴근하는 일반 병사다. 현역과 함께 5주짜리 훈련병 시절을 보내고 자대로 가는 현역병들과 '웃으며'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와서 며칠은 5주짜리 훈련병 물이 안 빠지다가 1달 정도가 되면 금세 민간인 물이 들어 머리 짧은 민간인이 된다. 그래도 단정한 머리(빡빡머리)로 군복은 입고 출퇴근해야 한다. 퇴근 후 불시에 자택 대기를 확인하는 전화를 하면서 관리를 한다. 다시 말해, (퇴근 이후 바깥에 돌아다닐 수는 있지만) 원칙적으로 자택 대기를 하며 불시에 벌어질 일을 대기해야 한다. 만약 밖에 술을 마시는데 부대에서 불시에 전화가 와서 밖에 있는 거 걸린다?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전화로 집에 있는 척을 하면 된다고? 당장 티비 켜서 KBS2에서 어떤 프로그램에서 누가 나오는지 물어본다..)

 

길거리에서 군복을 입었는데 걸음걸이가 자연스럽고, 주변 분위기에 어색하게 녹아들지 않는 군인이 아니라면? 그 군인이 바로 상근일 가능성이 크다.

 

상근을 선발할 때 우선순위가 있다. 학력, 신체등급, 연령, 자녀유무 등을 고려해 지방병무청이 선발하는데, 각 요인이 불리해야 더 선발 순위가 올라간다. 소위 말해 각 항목이 열등해야 유리하다. 나는 신체등급 3급이었고 재수하던 차에 신검 당시 고졸이었다. 주변 친구들보다 조금은 유리한 조건이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서울에는 워낙 인구가 많아 상근으로 뽑히는 건 극히 소수였다. 그러니 '신의 아들'이라는 호칭이 과장이 아니다. 평범한 노동자층-중산층 정도의 집안- 난 항상 노동자 계층 출신이고 앞으로도 노동자 계층에서 평범하게 제도 교육을 마치고 부침도 그럭저럭 없었던 내가 어쩌다 상근예비역으로 입소하니 주변엔 내가 만날 수 없는 삶을 살아온 스펙트럼에 얹혀 있는 인간 유형뿐이었다. 재수를 끝내고 대학 1학년 중간에 입대해 새파랗게 세상 물정 모르는 대딩 뉴비였던 나에 비해 인생에 치열하게 살아온 친구들이 많았다. 입대하고 나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부대로 출근하는 상근예비역도 있고, 각 지역마다 있는 예비군동대(흔히 동사무소에 위치)로 출근하는 상근도 있다. 부대로 가면 대부분 예비군훈련과 관련된 업무를 한다. 훈련용 총기를 관리하고, 예비군 훈련시 입소, 훈련, 퇴소, 결과 정리 등을 담당한다. 그냥 향토사단(전쟁이 발발하면 예비군들이 소집돼 소속되는 사단들. 주로 대도시 인근에 위치했다)에서 현역병들과 섞여 똑같은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 출퇴근이라고 해도 온갖 제한사항과 엄격한 규칙이 있는 부대로 가는 것보단 동대에서 민간인들 사이에서 일하는 게 더 선호되기도 한다. 그래서 동대로 출근하는 상근이 사고를 치거나 업무에 미진하면 부대 상근으로 전출보내는 일도 있다. 동대 상근에겐 업무에 소홀하지 않을 수 없는 막강한 네거티브 인센티브인 셈이다.

 

동대 상근은 막강한(?) 힘을 갖기도 거대한 시스템을 운용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예비군 국방의 중심축으로 '국가동원정보체계'를 운용하는데 상근들은 매일 일과가 여기에 접속해 여러 업무를 본다. 나름대로 엄정한 보안 수준이 유지되며 보안 때문인지 데이터 동기화가 정해진 시간에만 이뤄지며, 외부 접속이 불가능하며 네트워크 상황에 따라 접속과 이용에 제한이 매우 크다. (비가 오면 접속이 안 되기도..?)

 

동대 상근은 일상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예비군에게 훈련을 통지하고, 탈영한 병사를 잡으러다니는 것처럼 부대로 돌아와야 할 예비군을 찾거나 쫓는 일을 한다. 장교/부사관/병/심지어 공익은 막론하고 전역을 하고 나면 군대와 완전 연관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예비역으로 편입돼 법이 정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래서 퇴역이 아니라 전역이다. 장교/부사관은 각 계급에 따른 정년까지 예비역 장교에 소속된다. 병은 전역 후 8년차까지 예비군에 소속된다. 대부분 1~6년차까지 예비군 훈련을 받아야 한다. 연차에 따라 무조건! 18시간~36시간(5일 출퇴근 훈련부터 2박 3일 동원훈련 등) 훈련을 받아야 한다.

 

상근과 예비역 사이에 갈등은 법이 정한 이런 훈련에 예비군들이 순순히 응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휴가 나갔다가 복귀 날에 자대로 돌아가야 하는 군인처럼 예비군도 1년에 정해진 날 몇 번은 군대로 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여러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봐서 알 수 있듯 현역 시절 부대에 진절머리가 난 예비군들은 대부분 찰나의 순간이라도 부대 안으로 다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첫 훈련통지서가 날아왔을 때 정당한 사유로 연기를 하지 않아도 별문제는 없다. 말 안 듣는 예비군들을 고려해 국방부는 1~2차 보충훈련 일정까지 마련해 놓는다. 1~2차 훈련까지 연기하거나 불참했을 때를 대비해서 연말에 추가적인 보충훈련까지 준비된다. 모든 훈련에 참석하지 않고 버틴다고 해도 불참한 훈련 시간이 면제되는 건 아니다. 그다음 해에 누적된 시간만큼 또 부과된다. 동대 상근은 1년 동안 동대에 소속된 예비군들에게 각 군별, 계급, 연차에 맞게 훈련을 부과하는 일이다. 주시해야하는 훈련이 수십에서 많게는 3자리 수까지 육박할 수 있다.

 

첫 훈련 통지에서 대개 50~60%는 군말 없이 훈련에 참석한다. 1차 보충 때는 남은 30~40%, 2차 보충 때는 남은 10% 정도만이 훈련에 간다. 2차 보충훈련까지 불참하면, 상근은 법적인 수단을 발휘할 수 있다. 예비군 교육훈련 훈령에 따라 해당 예비군을 고발해야 한다. 고발장을 쓰고, 법적 조치하는 것이다. 보통 고발된 훈련 시간과 재범 여부에 따라 벌금을 낸다. 적게는 몇십, 많게는 몇백까지다. 법적 조치를 받아도 그 예비군은 안 받은 훈련을 언젠가는 받아야 한다.

 

훈련을 회피하는 예비군들로 상근들의 고난이 막중해진다. 보충훈련이 되면 집으로 우편이 아닌 인편으로 훈련통지서를 전달해야 한다. 사인이나 도장 찍힌 수령증을 받아야한다. 수령증은 소중히 보관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나중에 고발이 필요할 때 법적 근거로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비군이 "훈련이 있는지 몰라서 못 갔는데 왜 처벌하냐!"라고 항변하지 못하게 하려면. 어쨌거나 훈련통지서 전달은 고달프다. 예비군들은 불행 담긴 통지서를 훈련장에 가는 것만큼 순순히 받으려하지 않고, 일과 시간에는 보통 직장에 있어서 일과 시간 이후 늦은 저녁에야 전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저녁에 방문 약속을 해도 종종 약속을 어기고 부재중이기 일쑤다. 타지에서 거처를 마련해 "저 그 집에 안 사는데요?"라는 답변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아니, 그러면 전입 신고를 하든가) 주민등록된 주소에 실거주가 아니고 가족조차 살지 않는 게 확인되고 연락조차 닿지 않는다면 다시 공권력을 쓸 수 있다. 직권말소(지금은 거주불명등록자)를 신청해 행정처분을 하는 것. 훈련을 안 받고 잠적한 예비군을 찾으려고 DP 속 DP병들처럼 이웃을 수소문하고, 주변인에게 전화를 해보고, 가족 친지들을 찾곤 했다. 가끔은 늦은 시간 집 앞에서 기다리기도 했고.

 

예비군 추적을 하다보면,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날 수 있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어떤 동네인지에 따라 학력, 소득이 다르고, 그에 따라 예비군들의 매너가 결정된다. 내가 근무한 동네는 서울에서도 낙후된 편인 곳이었다. 예비군들의 나이에 따라 학력이 추정 가능하고 - 20대 중반에 동대에 소속되면 대학교를 나오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집을 보면 소득이나 재산을 추정할 수 있다. 예비군 정보를 보면 전입 이력을 볼 수 있고, 각 담당 예비군동대에서 기록해놓은 정보를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전국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직권말소 경력이 다수 있거나, 예비군 훈련에 상습적으로 불참해 여러 번 고발당한 예비군도 있다. 형제가 나란히 주먹 세계에 입문해 문신 가득한 팔뚝으로 훈련 통지서에 사인해주기도 한다. 예비군 훈련도 잘 안 나가는 등 철 안 든 예비군을 비호하는 어머니도 자주 만난다.

 

그러면서 든 생각이 있었다. 예비군 훈련이 예비군 일반에 일괄 적용되는 게 버거운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젊은 나이에 자영업에 뛰어든 사람은 본인 인생의 먹고사니즘에 하루하루의 일과가 너무나도 중요하다. 더욱이 1인 자영업이면 예비군 훈련 간다고 하루짜리 휴가조차 낼 수도 없고, 자기가 하는 일을 마땅히 대신 해줄 사람도 찾기 마땅치 않다. 자영업이 아닌 직장인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처럼 직장 내 예비군중대가 있거나, 체계적으로 예비군훈련을 대비해 한 사람의 몫을 대체해 줄 인력이 풍부한 곳이 아니라면 그 며칠 안 되는 예비군훈련이 부담스러운 환경일 수도 있다. 직장 내 분위기나 업무 흐름 때문에 임의로 정해진 훈련일 하루를 휴가로 빼기 어려울 수도 있다.

 

예비군 훈련에서 배려라는 혜택은 방학이라는 안정적인 시간이 있는 대학생에게 돌아간다. 모든 대학생은 1년에 딱 한번 8시간짜리만 받으면 된다. 저연차 예비군은 직장인이면 1년에 최소 2박3일 훈련을 가고, 저연차 예비군인 대학생은 1일짜리 출퇴근 훈련만 받으면 된다. 대학생이 시간이 남아돌고 직장인보다 무조건 한가하니 그런 혜택을 주면 안 된다는 게 아니다. 각자의 생계와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하나로 퉁쳐서 일괄적으로 훈련 시간을 부과하는 다소 뭉툭하고 유연성 없는 법이 문제라는 것이다.

 

비교적 먹고사니즘이 좋지 못한 동네에는 더 나은 먹고사니즘을 위해서 불철주야 일하는 청년들이 많다. 바쁜 시기에 훈련일이 잡혀 연기하거나 불참하면서 1년을 미루면 다음해엔 1년 중 최대 12일을 예비군훈련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정신 없이 바쁘고 살림살이 챙기기 바쁜 누군가에겐 군대가 전역하고나서도 바짓가랑이를 잡고 놔주지 않는 것과 같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청년들에게 일괄적으로 훈련 통지를 하고, 훈련 불참시 고발하겠다는 위협하고 겁을 주는 일은 온당치 않다. 훈련에 안 오는 예비군들이 원망스럽지만 훈련에 못 나오는 각자의 사정도 있을 텐데 항상 불참한 예비군의 잘못이라고 하기엔 너무 법 적용이 엄격하다. 탈영병의 탈영 원인을 탈영병에게만 찾는 DP 속(혹은 현실 속) 군대와 다를 바 없다.

 

예비군 훈련과 관련된 다양한 소재가 군필자들에겐 시시콜콜한 밈이 되어 술자리 농담 따먹기 소재가 되었지만, 아직도 누군가에겐 예비군 훈련이란 의무는 삶의 무게를 가중하는 숨 막히는 국가의 요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