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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선생님

Mr Brightside 2019. 7. 2. 22:39

나는 소위 선생님이고 불리는 사람에게 배워본 적도 있고, 그런 사람이 되어본 적이 있다.

 

제도 교육 12년과 대학 4학년 총 16년 동안 수많은 선생님을 만났다. 16년의 시간은 좋은 선생이란 무엇인지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기간이기도 했다.

 

6년 넘게 학원에서 알바를 하며 영어를 가르쳤다. 내 생활비를 벌 생각이었고, 즐겁게 일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먼저였다. 좋은 선생님이라는 기준은 공부를 '잘 가르치는 것'보다 '기분을 잘 구슬려 공부할 의지를 다져주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했기에 아이들에게 흔히 말하는 멘토가 되고자 했다. 무엇보다 연소자보다 쬐끔 더 살았다고 해서 가르치려 드는 것만큼 무의미하고 꼰대스러운 게 없다고 생각했기에 '군림'하려는 모든 행동을 경계했다.

 

6년 동안 많다면 많은 친구들이 지나갔다. 친구마냥 하하호호 지냈던 친구들도 많았다. 그렇게 많고 많은 학생 중 나를 화나게 했던 케이스는 딱 한 번 있었다.

 

A는 이미 학원을 다니고 있던 B의 친구였다. 성격 좋고 가끔은 능청스럽게 귀여움 떨었던 B와 다르게 A는 높은 자존감과 야망에 낮은 실천력을 지닌 친구였다. 본인의 자존감이 매우 커 공부를 하지 않아도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막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A는 특성화고 중에서도 준수한 곳으로 입학하게 됐고 거기서도 성적 줄세우기에서도 상위권에 있어서 콧대가 바짝 솟아 있었다. 

 

그랬기에 비싼 돈 주고 오는 학원은 안 가도 그만인 단지 지루한 공간에 불과했다. 아주 기본적인 학습량을 소화하지 않으려 했고 선생님들은 자신을 괴롭히는 악당으로 치부했다.

 

한두번 그런 모습을 보다보니 결국 참을 수 없었다. 내 말을 듣지도 않고 천장이나 쳐다보는 방자한 모습이 괘씸했다기보다 부모님이 힘들게 벌어오신 돈으로 애써 보낸 학원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않는 모습에 화가 났다. 그 어떤 곳에서도 누구에게나 미움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정말 최소한의 인간 도리가 아니었다.

 

수업 중 유난히 빈정거리는 모습을 보였을 때 한번 크게 화를 냈다. 1시간 동안 그 친구에게 내 생각을 쏟아냈다. 언성은 높아졌을지 모르겠지만, 강요나 훈계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A 행동과 사고방식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납득시키고 싶었다. 답답하고 화가 났지만 진실한 마음이었다.

 

사실 내 말이 씨알이나 먹혔을지 잘 모르겠다.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혼날 때 벽에 있는 무늬나 되뇌었던 걸 생각하던 것처럼 A는 막상 학원 끝나고 뭐하러 놀러갈 건지 생각하고 있었을는지도 모르지.

 

그 이후로 A가 나를 피하거나 더 경멸할 것이라고 걱정했지만, 그렇진 않았다. A는 학원에서 그전보다 많이 차분해졌고, '비교적'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선생님들의 비슷한 전언도 있었다. 무엇보다 나를 정말 미워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럼에도 그전보다 나에게 더 싹싹하고 친근하게 인사해줘서 고마웠다. 나는 '내가 뭐가 잘났다고 그 지랄을 했을까'라는 자책감을 느끼면서 앞으로는 누구도 가르치려고 들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A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나는 취업으로 학원을 떠났다. 그 뒤로 듣기론 A 친구들은 다 학원을 떠났고, A 혼자 남아 학원을 다녔다. A가 고등학교 졸업 후엔 어떻게 됐을까 알지 못했다.

 

시간이 또 지났다. 오늘 운동을 하고 1층 현관으로 나왔을 때였다. 편의점 앞에서 스쳐가는 사람이랑 짧은 찰나 눈을 마주쳤다. 낯익은 얼굴에 서로 되돌아 봤다. 20살이 된 A였다.

 

너무 반가워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그대로 지나갈 뻔한 편의점에 들러 시원한 음료수를 샀다. 음료수를 건네고 근황을 물었다.

 

무엇보다 지금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는지가 궁금했다. 더 좋은 학교, 남들이 알아주는 진로는 아무짝에 쓸모 없다. A가 정말 좋아하는 순간이어야만 했다.

 

A는 소방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썩 만족스러워 했다. 실상 A는 자기가 목표로 했던 I대학을 합격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소방학과로 진학해 소방관으로의 진로를 원했고 A는 그것을 따랐다. 조금 후회되는 것도 있다고 했지만, 표정에 후회가 묻어있진 않았다.

 

A는 다음달 해병대로 입대한다고 한다. 지금 제일 큰 걱정은 너무 군대를 일찍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물론 그건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었다. '가보면 안다. 빨리 갈 수록 더 좋다는 걸.'

 

무엇보다 A에겐 확신이 있었고, 알맹이 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나는 내가 금메달을 딴 것처럼 뿌듯했다.

 

...

 

그저께 고등학교 3학년때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몇년 전 김성수 선생님이 돌아가시면서 꾸준히 만나온 유일한 선생님이시다. 몇년 전 정년퇴임을 조금 앞두고 돌연 자진퇴임하셨던 선생님이다.

 

정년을 다 채우지 않은 이유를 그저께 듣게 됐다. 선생님이 가르쳤던 한 학생 때문이다.

 

고등학교는 내가 졸업한 뒤 얼마 후에 자립형자립고가 됐다. 내가 다니던 때보다 학업이 더 우수한 친구들이 들어오게 됐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서 아이들의 자존감과 야망도 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학교는 인생 얘기를 많이 해주고 진지함보다 유쾌한 면이 많으신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불쾌한 말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 됐다. 담임 선생님도 그런 얘기를 들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교과 대신 다른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해당 교과 대신 다른 과목 자습을 하던 학생이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좀 조용히 좀 하라"라고 소리쳤다. 선생님은 화가 나서 그 아이를 불러내 체벌하려고 했다. 체벌이 가해지려고하자 그 학생은 선생님에게 "연금 받기 싫으시냐"라고 따졌다. 체벌로 징계받아 학교에서 짤리게 되면 연금에서 큰 불이익을 받게 되는 구조를 알고 있던 학생이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그 말을 듣고 당일에 바로 사표를 냈다. 선생님은 학생들 눈에 비친 선생님의 모습은 은퇴 후 안정적으로 사학연금을 받으며 여생을 보내려는 소시민, 인간 일반, 꿈이 없는 사람으로 전락했던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그 모멸감을 참을 수 없었고 그날로 '그리 대단하지 않은' 연금을 다소간 포기하셨다. 그 학생이 다음날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지만, 그 우연한 깨닮음으로 '덕분에(?)' 사표는 그대로 효과를 냈다.

 

선생님은 퇴임 후 음악, 스포츠, 미술, 문학을 즐기며 더 자유로운 삶을 살고 계신다. 어쩌면 정년을 채우고 퇴임하셨던 것보다 더 알차게 삶을 보내시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보는 선생님은 대단히 훌륭하고 멋지시다. 선생님이 날 보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실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물론 궁금하지만, 여쭤본 적 없다.

 

나는 좋은 선생님이라는 내가 세운 이데아에 눈꼽만큼이라도 준했을까, 그리고 담임선생님은 그 기준에 준했을까? 그건 나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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