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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낙하산(Parachutes)

Mr Brightside 2017. 1. 31. 01:55





 낙하산(Parachutes)는 2000년에 공개된 콜드플레이의 데뷔 앨범이다. 브릿팝이 세계를 호령할 무렵, 브릿팝을 가장 잘 드러낸 앨범인 동시에 콜드플레이만의 진기한 색을 동시에 드러내는 데 성공한 앨범이다. 'Parachutes' 앨범은 훌륭한 성과를 내며 콜드플레이가 21세기를 대표하는 밴드로써 음악 시장에 낙하산을 타고 연착륙했음을 의미했다. 여전히 앨범에 수록된 'Yellow', 'Shiver' 같은 곡은 사랑 받고 있다.


스페인어를 얕게 공부하며 알게 된 점은 'Parachute'처럼 'para'를 접두사로 한 단어가 많음을 알게 된다. parasol, paradox 등. 라틴어 계열의 언어로써 의미는 간단하고 일맥상통한다. para는 against와 비슷한 의미를 띈다. 뒤에 따라올 말에 대항한다는 개념을 내포한다. sol은 태양이고, dox는 의견을 의미한다. 낙하산(Parachute)에서 불어 'chute'는 추락을 의미한다. 접두사와 어근이 더해져 추락을 막는 도구를 뜻하는 단어, 낙하산이 된 것이다.


낙하산은 한국 사회에선 사전의 두 번째 의미로 쓰인다. 낙하산이란 단어를 들으면 이제는 당연하게 학연, 지연, 혈연을 통해 부당하게 한 자리를 해먹는 모습을 떠올린다. 제1의미와 제2의미는 역전되었다. 추락을 막아 생명을 도모하는 도구가 아니라, 빠르게 상승해 누구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개념이 되었다.


내가 유일하게 겪은 낙하산 경험은 훈련소에서였다. PRI라는 이가 부들부들 갈리고 스트레스 받는 훈련이 끝났다. 가장 무섭고 엄한 훈련교관이 훈련이 끝날 무렵 큰 소리로 외쳤다. "7번 훈련병 어딨어?" 훈련 중 호출 받는다는 건 필경 내가 잘못한 일이 있거나 기합 받을 일이였기 때문에 바짝 긴장하고 앞으로 나갔다. 그러나 교관은 분노나 고함 대신 나직한 목소리로 빨리 막사로 가보라고 하더라.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걱정이 몰려왔다. 잰 걸음으로 막사 행정반으로 갔다. 안쪽 쇼파가 있는 안락한 공간에 가니, 거기엔 처음보는 여군이 있었다. 계급장엔 상사 마크가 눈에 들어왔다. 그 낯선 분이 계셨다. 처음보는 사람이 대뜸 7번 훈련병도 아닌 내 이름까지 부르며, 훈련은 할만 하냐고 물어봤다. 바짝 군기 든 상태에서 어버버 괜찮다고 대답하고 나니 그분이 하는 말이 아버지의 아는 분이 같은 사단에서 원사로 근무 중이고 자기 직속 상관이라 부탁을 받고 어떻게 지내는지 보러 왔다는 것이었다. 필요한 건 없냐는 물음에 나는 괜찮다고만 이야기했다. 생활관에 돌아와 토끼눈으로 날 기다리는 훈련 동기들에게 이 얘기를 풀어 놓으니 초코파이나 콜라라도 사달라고 하지 그랬냐는 핀잔이 날아왔다. 이 말을 들으니 스스로가 멍청했나 싶기도 했다. 아버지가 우병우였으면, 훈련소는커녕 군대에 가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일을 시간이 지난 뒤 생각하니, 참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아버지가 걱정되는 마음에 대수롭지 않게 아는 분께 말을 했음은 이해가 간다. 고작 잘 챙겨달라는 말 한마디 했을 테지만, 그 말 한마디로 신병훈련소와 관련 없는 간부 한 분이 훈련병 한 명이랑 고작 몇 마디 나누려고 눈 빗발치는 날 먼 걸음을 했다. 훈련소의 교관과 조교들 모두에게 신경쓰이는 민폐였을지도 모른다. 이는 미필적이지만 간소한 청탁이었음은 진배없다.


설에 삼촌댁에 친척이 잔뜩 모였다. 삼촌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시사적인 얘기를 나누는 도중 삼촌에게 "최순실 사태 보면서 느끼는 거 없냐?"라는 질문이 날아왔다. 이말은즉슨 허무하지 않냐는 거였다. 아무리 난다 긴다 노력해도 결국 끗발 좋은 사람에게 빌붙어서 남들보다 훌쩍 먼저 출세하는 작자가 판치는 우리나라를 보며 허무하지 않냐는 것이었다. 이들을 도덕적으로 옹호할 순 없지만 삼촌은 우리나라는 아직 이런 곳이라고 생각하고 계셨다. 삼촌은 정치권 경험과 사업을 하면서 아는 사람이 많은 것과, 그 인맥의 힘으로 덕을 본 경험을 짚어주었고, 누구나 이런 식으로 사는 요령이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셨다. 가령 내 입장에 이 방식을 적용하자면, 한 언론사에 면접을 보게 되었을 때다. 면접에서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다시 말해 낙하산을 태우든 낙하산 냄새라도 맡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입김을 부탁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적극적으로 말이다. 요즘 큰 언론사에 최종 합격하는 애들 뒤에도 면접 외적인 노력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고 꾹 듣고만 있었다. 


예전에 한 큰 방송사 면접을 앞두고 부산스럽게 준비했었을 때였다. 아버지가 들어온 적 거의 없는 내 방에 슬그머니 들어오시더니 이런 제안 아닌 제안을 하셨다. "아빠가 아는 사람들 찾아봐서 도움이 되게 좀 해볼까?" 머릿속에 낙하산 그림이 그려졌다. 아버지는 내가 존경하는 분이긴 하지만, 소위 말하는 학연, 지연, 혈연 등 떡고물을 떼다 나에게 줄 여력이 없는 분임을 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는 우병우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말씀하시니 혹시 나몰래 알던 대단한 분이 계셨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동공에 지진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날은 내가 평생을 엄하고 무서운 아버지께 큰 소리로 다그친 날이었다. "그런 쓸데 없는 짓 하지 마요. 무슨 그런 것까지 하면서 그래요."

아버지는 몇 번 더 얘기를 해주셨지만, 난 단호하려고 노력했다. 아버지가 알겠다하며 나가신 후에도, 나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싱숭생숭한 마음을 거둘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 거절을 한 뒤 오히려 면접 준비에 힘이 났다. 내가 큰소리로 아버지를 다그친 만큼 더 열심히 준비할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긴 기분이었다. 내 스스로의 힘으로 들어가고 싶은 곳에 들어가야겠다고 굳게 마음 먹을 수 있는 계기가 된 셈이었다. 그러나 면접은 보기 좋게 떨어졌다. 불합격 고지를 받으면서도 그 낙하산 냄새를 떠올리며 아쉬워하거나 하진 않았다. 정신승리였던 걸까.


우리나라에 낙하산은 너무나도 많다. 일상적이어서 알아챌 수 없는 낙하산부터, 나라를 휘청이게 할 낙하산까지 색깔별로 크기별로 너무나도 다양하다. 

내게 찾아온 낙하산의 경험은 대단하지도, 웅장하지도, 치명적이지도, 심지어 가시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야트막한 것에서도 달콤함과 이끌림의 힘은 강력했음을 경험했었다.

그러나 나는 낙하산을 찢는 인생을 살 테다. 작은 선언이다. 삼촌 앞에서 차마 대꾸하지 못한 말을 이 자그마한 블로그 한 구석에서 자신 있게 외쳐본다. 그러니까 새로운 단어를 만들자면, para-parach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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