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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티스트중에서 법원이 가장 많은 인용을 했던 주인공은 누굴까. 답은 어렵지 않다. 밥 딜런의 오랜 수식어 중 하나가 '노벨 문학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아티스트였고, 또 '법원에서 가장 많이 인용하는 가사를 쓴 아티스트'로도 이름값을 높였다. 그는 2011년 기준으로 법원에서만 186번 피인용되었고, 74번으로 2위에 자리한 비틀즈와도 큰 격차였다. 판사는 판결문에서 밥 딜런의 가사 한 줄로 수십 줄의 근거와 설명을 대신할 수 있었고, 누구나 알 수 있는 가사를 통해 축약의 묘미를 발했던 것이며 결국 판결에 있어서 탁월함도 취할 수 있었다.


가장 유명한 가사 중 하나는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기 위해서 일기 예보관이 필요한 건 아니다(You don’t need a weatherman to know which way the wind blows)'라는 가사다. 이 가사는 'Subterranean Homesick Blues'에서 등장한다. 캘리포니아 법원이 교육계의 소송에서 사소한 문제를 두고 전문가의 증언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 판결을 내릴 때 인용한 문구다. 일반적인 상식 안에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를 두고 복잡하고 번거롭게 전문가의 말까지 들어볼 필요까지 없음을 드러내는 말이다. 이 문구는 지금도 많이 언급된다. 주로 쓸데없이 절차를 복잡하게 하고, 명백한 사안에 다른 이야기까지 끌여들어오는 소위 '물타기'를 두고 비판할 때다. 


우리 사회는 이런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많이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일기 예보관이 필요 없을 때 일기 예보관을 찾고 있고, 일기 예보관이 필요할 때 그를 누락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 농민이 물대포를 맞아 사망에 이르렀음에도 그 죽음의 원인을 알 까닭이 없어 '병사'가 되고, 대통령의 비선실세가 있음이 확실함에도 검찰은 명백한 증거가 없어 수사에 뜸을 들이고 있다. 어쩔 때에는 그들이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에는 관심조차 있을까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밥 딜런의 인용구 중 무엇보다 가장 유명한 건, '당신이 가진 게 없다면, 잃을 것도 없다(When you got nothing, you got nothing to lose)'라는 가사다. 법원뿐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에도 녹아든 문장이기도 하다. 밥 딜런의 킬링 트랙인 'Like a Rolling Stone'에 실려있다. 미 연방대법원에서 통신사간 영업 다툼을 두고 내린 판결에서 인용됐다. 이 소송은 한 통신사가 다른 통신사에 대해 피해보상을 신청한 소송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원인으로 피고가 취한 어떤 경제적 이익이 없었기 때문에 연방대법원은 이 가사를 인용해 판결을 내렸다. 그 통신사는 얻은 게 없었기 때문에, 소송을 통해 잃을 것도 없게 됐다.


영화 타이타닉 중



'당신이 가진 게 없다면, 잃을 것도 없다'는 주장은 저 소송엔 물론이고, 일반적인 우리네 인생에서도 일견 맞는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함부로 맞다고 말하긴 힘들지 않을까. 직장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매번 고배를 마시는 취준생에게는 적용이 되는가, 자기 집 하나 없이 하염 없이 전세와 월세를 전전해야 하는 초년생에겐 가당한 말인가. 이들은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을 두고 잃을 게 없다고 언질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 반대로 경제 불황과 저성장 시대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얻기보다 잃을 확률이 높다. 무언가를 얻는다는 건 가까운 미래에 그것을 잃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것은 몇 곱절 더 냉혹하다.


밥 딜런의 가사는 심오하고, 아름답고, 함축적이다. 문화 지평을 넓혔고, 수많은 아티스트에게 영향력을 끼쳤다. 그렇게 밥 딜런의 가사들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고, 법원의 판사들 마음도 동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삶과 사회 구석구석에 내려 앉았다고 보는 건 매우 이른 판단이다. 밥 딜런이 우리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세상은 아마 밥 딜런이 그린 이상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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